
『기로에 선 기독교』 저자 마이클 크루거 교수가 신학 및 기독교 서적 리뷰 플랫폼인 Books At a Glance에서 남침례신학교 조직신학 겸임교수 프레드 자스펠과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자스펠_ 아주 먼 옛날인 2세기가 오늘날 기독교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마이클 크루거 박사는 바로 그 질문을 탐구하기 위해 책을 집필했습니다.
저는 Books At a Glance 편집장 프레드 자스펠(Fred Zaspel)입니다. 오늘은 크루거 박사님을 모시고 『기로에 선 기독교: 2세기 기독교는 어떻게 교회의 미래를 형성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이크, 환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책을 출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크루거_ 감사합니다, 프레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책에 관해 이야기 나눌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
자스펠_ 이 책은 시작부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바로 “기로에 선 기독교”라는 제목인데요. 2세기 기독교가 마주한 도전과 사건들이 기독교 자체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했고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크루거_ 이 책은 제목에서 2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조금이나마 포착해 내려고 했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2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마주한 일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은 정말 여러 면에서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린 결정, 그들이 직면한 도전, 그들이 다루어야 했던 문제는 모두 교회가 생존할 수 있을지, 그리고 다가올 2,000년 동안 교회 모습이 어떠할지를 결정짓는 요인들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늘 여러분 스스로 2세기 그리스도인의 처지가 되어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당시는 교회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전혀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제가 드리는 말씀은 하나님의 관점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교회를 보존하실 것이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상황이 그리 잘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자신들이 과연 그 난관을 헤쳐 나가 생존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모든 도전을 감당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중대한 세기가 오늘날 우리 모습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사람들이 깨닫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자스펠_ 그 주제나 그 시대에 관한 연구 작업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죠?
크루거_ 그렇습니다. 사실 그것이 제가 이 책을 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2세기 연구에 있어 학문적인 공백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서론에서도 이 점을 조금 다루고 있는데, 본질적으로 2세기는 훨씬 대중적인 두 시대 사이에 끼여 있어서 일종의 ‘잊힌 시대’가 되었습니다. 1세기는 신약성경 덕분에 엄청난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3세기와 4세기는 아우구스티누스든, 콘스탄티누스든, 에우세비우스든, 오리게네스든 간에 그 시대 인물들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았고요. 그러다 보니 학자들은 그 중간에 끼여 어정쩡하게 자리 잡고 있는 2세기를 대체로 빠르게 지나쳐 버렸습니다. 이 시기를 다루는 기본적인 입문서 역할을 하는 책이 정말로 단 한 권도 없었던 것이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중 하나였습니다.
자스펠_ 2세기 사회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자리 잡고 있었나요? 그리스도인들은 용인되는 분위기였습니까? 박해가 있었나요? 기독교가 당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크루거_ 흥미롭게도 더 넓은 그리스-로마 세계가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세기에 들어서였습니다. 1세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그저 유대교의 한 하위 집단(분파)으로 여겨졌습니다. 여기저기 예외는 있었지만, 대체로 그리스도인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세기에 이르러 그들 수가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었고, 그리스-로마 세계도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여러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로마 세계의 부적응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에 어울리지 못했고, 유별나거나 특이하거나 이상한 집단으로 비쳤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들은 문제거리이자 불쾌감을 주는 존재, 그리고 로마제국의 안정을 위협하는 전복적인 집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핵심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신들을 예배하는 일에 동참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로마 신들을 소홀히 대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로마제국 전체를 신성한 진노의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여겨진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시민처럼 보이지 않았고, 로마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히고, 체포당하고, 일부는 순교하여 목숨을 잃는 등 수많은 방식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힘든 시기였지요. 제가 앞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기독교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명확했다고 말씀드린 데는 바로 이러한 이유가 컸습니다. 그들은 2세기에 결코 인기 있는 집단이 아니었으니까요.
자스펠_ 2세기는 “변증학의 황금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한 배경이 된 당시 상황들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크루거_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기독교가 매우 적대적인 세계, 즉 온갖 종류의 혐의로 고발당하고 박해받으며 목숨을 위협받는 세상에 처하게 되자,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그 모든 비판에 대응하는 역할을 떠맡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비판에 대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제가 그런 처지로 내몰렸다고 말씀드린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종의 입장 표명을 해야만 했다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기독교 변증학이 태동했습니다.
기독교 변증학은 어떤 의미에서 2세기에 탄생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적대적인 이교도 세계와 의미 있게 소통해야 했던 최초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증가들은 글을 썼고,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냈습니다. 기독교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작성된 2세기 변증서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수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방식으로 이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기독교 교리를 방어했고, 왜 기독교가 이치에 맞는지 설명했으며, 이교도 종교들이 왜 터무니없고 따를 가치가 없는지 비판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받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당국에 시민적, 법적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호구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딘가 모르게 불량한 시민이라는 잘못된 오해들을 해명하려고 애쓴 것입니다.
따라서 변증학은 2세기의 큰 축을 차지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헌이 많이 남아 있으며, 오늘날에도 매우 유용합니다. 그 글들을 읽다 보면 “와, 오늘날 기독교를 향해 제기되는 비판들이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제기되었던 논거들과 똑같구나”라는 점을 깨닫게 되고, 심지어 그에 대한 답변까지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를 통틀어 매우 흥미로운 측면입니다.
자스펠_ 2세기 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대립한 신학적 쟁점들은 무엇이었나요?
크루거_ 저는 이 책 한 장 전체를 2세기 기독교의 ‘신학적 다양성’이라고 부르는 주제에 할애했는데요, 제가 그 장에서 밝힌 포인트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기에 신학적인 투쟁 속에 있었으며 자신들의 삶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법적이거나 정치적인 차원 이상으로, 그들은 신학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이단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믿고 왜 믿는지 정말로 철저하게 고뇌해야 했으며, 그 후 이 이단 운동들에 대응해야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복잡한 요인 중 하나는, 그 이단 운동들이 스스로를 기독교로 표방하며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이단들은 자신들이 이단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자신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자 정통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집단 사이에 다양한 교리를 두고 논쟁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싸운 교리는 무척 다양합니다. 책에서 그 세부 사항까지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격렬하게 논쟁한 몇 가지 핵심 교리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창조론’입니다. 마르키온파나 어느 정도는 영지주의자 같은 이단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피조 세계가 기독교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지 않았으며 세상은 본질적으로 악하거나 타락한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에 정통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반박하며 “아니다, 이 세상은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결과물이며, 그분이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고 그것을 선하게 지으셨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정확히 누구이신지, 그분이 하나님이신지, 인간이신지, 아니면 둘 다이신지, 그리고 어떻게 둘 다일 수 있는지에 대한 ‘기론론적 논쟁’이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이 모든 논쟁은 매우 중요했기에, 그 결과가 어떻게 귀결되느냐가 2세기뿐만 아니라 향후 2,000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자스펠_ ‘신앙 규범’이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그것이 2세기 기독교에서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크루거_ 제가 다양성에 관한 장을 다룬 바로 다음 장이 ‘초기 신학적 일치’에 관한 장입니다. 이 시기에 기독교 전반에 걸쳐 의견 불일치와 다양성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온갖 지역과 시대를 아우르며 정통 그리스도인들이 보편적으로 고수한 핵심 믿음들의 집합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신학적 일치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신앙 규범’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신앙 규범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요약하여 묘사할 때 사용한 일종의 언어적 체계입니다. 초기 신조 같은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것을 믿는다”라는 서사적 형태를 띠고 퍼져 나갔습니다. 비교적 간결했고, 기억하기 쉬웠으며, 반복하기도 쉬웠습니다. 신앙 규범은 기본적으로 성경적 서사의 요약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권위를 가지는 추가 문헌이 아니라, 그들이 믿기에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를 요약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신앙 규범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묶어 주고 그들을 모두 같은 자리에 서게 만들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신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저는 2세기 전반에 걸친 신앙 규범의 역할을 문헌으로 입증하고, 서로 다른 장소와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모두 신앙 규범의 변형된 형태들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을 단단하게 결속시켰는지를 보여줍니다.
자스펠_ 신앙 규범의 기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나요?
크루거_ 그 기원을 명확히 추적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신앙 규범은 신약성경 자체 안에서도 이미 그 흔적을 보이고는 있습니다. 신앙 규범에 사용된 일부 언어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끌어와서 그것을 재진술하고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부 문헌 중 최초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는 2세기 초반이라는 꽤 이른 시기부터 신앙 규범의 초기 버전들을 목격합니다. 어느 정도 추적할 수 있는 정황은 많지만, 정확히 누가 그것을 처음으로 구성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초기 신조적 진술을 사용하는 아이디어 자체가 신약성경 안에서도 가시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종종 신조의 성격을 띤 더 이른 시기 자료들을 끌어다 썼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여러 면에서 신앙 규범을 낳은 씨앗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식의 작업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스펠_ 이미 앞서 넌지시 언급하시긴 했습니다만, 2세기 기독교가 처한 상황과 도전들은 오늘날 우리 모습과 어떤 점에서 닮아 있고, 또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크루거_ 이 책을 쓰면서 제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점 중 하나는, 특히 최근 10-20년 동안 서구 세계가 흘러온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우리가 2세기와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였습니다. 지난 10-20년 동안 기독교는 점점 소수파가 되었고, 영향력은 약해졌으며, 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고, 신자들은 갈수록 더 많은 박해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적 전제를 덜 사용하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2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도전의 종류와 그들이 다룬 질문의 성격은, 현대라는 문화적 시점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질문의 종류와 매우 흡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2세기에 대한 연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바가 참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문화적 소수파가 되어 어떤 실질적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박해와 적대감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2세기와 오늘날 사이에 일종의 ‘거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100년 전 미국이라면 상황이 전혀 달랐으리라는 사실입니다. 아마 100년 전 미국인들이 초기 교회를 돌아보았다면 아마도 4세기 상황에서 더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2세기가 우리와 가장 유사한 시대로 단연 돋보입니다.
자스펠_ 2세기가 시작될 때와 막을 내릴 때 기독교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비교해 주실 수 있나요?
크루거_ 변화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책에서 저는 이러한 종류의 ‘대전환’을 여러 개 다루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기독교의 ‘사회학적 구성’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2세기 초반만 해도 우리는 여전히 유대교에서 막 빠져나와 그 안에 수많은 유대인을 포함하고 있는 종교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세기 말에 이르면 기독교는 대체로 이방인 중심의 현상이 되었다고 논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의 변화입니다.
또 다른 변화는 교회가 보이는 형태와 기능하는 방식, 즉 구조적인 층위에서 찾아옵니다. 2세기 초반에 교회들은 대부분 철저히 지역화되어 있었고 지역 장로 그룹에서 운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2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훨씬 고도화된 구조를 갖추게 되며, 심지어 개별 회중들 위에 군림하는 ‘감독’ 개념까지 등장합니다. 분명히 주목할 만한 전환들이 존재합니다.
또한 읽는 ‘책의 정경’ 측면에서도 대전환이 일어납니다. 2세기 초반 그리스도인들은 훗날 신약성경에 포함될 몇몇 책을 분명히 읽고 있었지만, 2세기 말에 이르면 그 핵심 코어가 매우 명확하고 견고하게 굳어집니다. 그리하여 2세기 말에는 신약 27권 중 아마도 21-22권 정도의 책이 상당히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이것들이 2세기가 포괄한 대전환의 몇 가지 예시입니다.
자스펠_ 박사님은 2세기 기독교가 ‘책 중심적’ 문화였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면모가 왜 성경 정경에 관한 논의를 필연적으로 만들었나요?
크루거_ 이것은 제가 이전의 다른 저작들에서도 탐구한 기독교의 또 다른 특성이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깊이 파고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발견한 사실 중 하나는, 이 특성이 기독교를 얼마나 독특하게 만들었는가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책에 기반을 둔 종교를 생각할 때 그것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하고, 유대인도 그렇게 하며, 이슬람교도, 몰몬교도 그렇게 하니까요.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성스러운 책을 떠올릴 수 있죠.
하지만 2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책에 기반을 둔 종교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자신들의 실천이나 믿음의 근간으로 삼아 사용하는 종교는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독교는 다소 유별난 ‘별종’ 취급을 받았습니다. 기독교가 굉장히 ‘책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기독교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즉, 기독교는 매우 텍스트 중심적이었고, 자신들이 믿고 가르치는 바의 근간으로서 구약과 신약의 책들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로마인들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가 적어도 그들이 이해하는 종교의 방식 관점에서는 전혀 종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하나의 ‘철학’처럼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교라기보다는 대체로 하나의 철학파처럼 여겨졌는데, 이는 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 기독교가 지닌 지적이고 텍스트적인 차원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줍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차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합니다. 신자가 된다는 의미 안에는 아주 탄탄한 텍스트 중심의 지적 측면이 존재합니다. 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좀 더 철학자들처럼 보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초기 교회에 분명히 일어난 일이며, 지금 우리에게 더 많이 필요한 모습입니다.
자스펠_ 그러한 책 중심적이고 텍스트 지향적인 성향은 결국 우리가 신성한 계시에 기초한 종교라는 본질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요?
크루거_ 그렇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책 중심적 면모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은 아닙니다. 유대교로부터 그것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유대교는 적어도 로마인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고립되어 있었고 자신들만의 지정학적 실체 안에 국한되어 있던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갑자기 로마 세계 전역 도처에서 출몰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훨씬 대중의 눈앞에 다가오는 종교가 이제 책 중심적인 면모를 띠고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아이디어를 유대교적 배경에서 상속받은 것은 분명 맞지만, 로마인 관점에서는 그것이 상당히 낯설고 이례적으로 보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정한 유산입니다. 우리의 구약성경적 배경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는 책들을 가지고 있었고, 물론 지금도 정경 안에서 그러합니다.
자스펠_ 2세기에 기독교는 어떤 성장을 경험했나요?
크루거_ 이것은 논쟁적인 주제인데요, 물론 ‘엄청난 성장’을 했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기독교는 2세기 초반만 해도 아주 작았고, 절대 수치로 보면 2세기 말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꽤 작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장률’ 차원에서 보면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아주 많이 자란 것이죠. 정확히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진행 중이므로 여기서는 그 구체적인 논쟁 구도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매우 많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관리들이 우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에 대한 아주 훌륭한 예시로 소 플리니우스가 남긴 서신을 들 수 있습니다. 플리니우스는 비티니아 총독으로, 황제에게 편지를 한 통 썼는데, 이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불만은 기독교가 확산되고 있으며, 그것도 매우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그는 기독교를 하나의 ‘전염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온갖 장소로 퍼져 나가는 질병과도 같다는 것이죠. 그는 기독교가 도시에서 시골로 확산되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 교육받은 자와 교육받지 못한 자,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도처에 널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플리니우스를 통해 기독교가 당시 참으로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는 감각을 최소한 분명히 포착할 수 있습니다.
자스펠_ 저희 청취자들이 이 책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알도록 박사님 책을 아주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크루거_ 지금까지 나눈 대화와 이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기본적으로 2세기 교회의 형태, 그리고 교회가 견뎌낸 기로와 대전환들이 어떻게 교회의 미래를 결정지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이러한 대전환들을 추적하였고, 독자들을 그 과정 속으로 한 번에 하나씩 안내합니다.
책 안에 서로 다른 다섯 가지 대전환이라고 부를 만한 틀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학적 전환으로, 주로 유대인 중심 종교에서 이방인 중심 종교로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빈부귀천은 물론 남녀를 어떻게 아우르게 되었는지를 포함한 다른 사회학적 차원들도 추적합니다.
두 번째로 문화적, 정치적 전환을 다룹니다.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세계에 주목받으면서 어떻게 정치적, 법적, 철학적 저항을 견뎌내기 시작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 저항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주로 변증학의 부상을 통해 어떻게 대응했는지 논합니다.
세 번째로 교회론적 전환이라고 불리는 단계를 다룹니다. 교회가 어떤 구조로 형성되어 있었고 교회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가정 교회와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모였는지, 누가 교회를 다스렸고 그 다스림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예배했는지 이야기합니다. 이 모든 것은 2세기 초반과 후반 사이에 꽤 많이 바뀌었기에, 그 전환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네 번째로 교리적, 신학적 전환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단들과 싸우고 정통을 수호하며 기독교 신학을 올바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방어하기 위해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다룹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신앙 규범의 역할, 영지주의부터 마르키온주의, 에비온파 등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이단 집단들을 파고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텍스트적, 정경적 전환이라고 부르는 단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구약성경만 사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어떻게 신약성경을 채택하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변증서, 신학 논문, 서신, 순교록 등 자신들만의 책을 어떻게 쓰기 시작했는지 다룹니다. 이 장 전체는 기독교가 얼마나 책 중심적이었으며, 서로 얼마나 많은 글을 쓰고 읽고 교류했는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다섯 가지 대전환 영역으로, 독자분들은 2세기에 대해 더 많이 배우면서 각 영역에 대한 독립된 장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스펠_ 지금까지 신간 『기로에 선 기독교』의 저자 마이클 크루거 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종종 소외되는 연구 분야에 중요한 공헌을 세운 책이며,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저작입니다. 훌륭한 저술 작업을 해주시고 이야기 나누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크루거_ 감사합니다.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제미나이 번역 후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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